1940년 7월 1일자 잡지 <삼천리>에 게재된 글입니다. 유럽에서 한창 나치 독일과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일전이 치뤄지고 있을 무렵, 식민지 조선에선 당시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유명 인사들을 모아 전쟁의 승패 예측을 해보자는 주제로 문답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글을 쓴 독자들이 날짜를 정해놓고 한번에 글을 쓰게 아니라 여러 시간대에 걸쳐서 쓰여진 글을 한데 모은 것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정세와 맞지 않은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가령, 질문 중엔 이탈리아가 전쟁에 참여할 거냐는 내용이 있지만, 7월 1일자 기준으로 이미 6월 10일에 이탈리아가 영프에 선전 포고를 하고, 6월 14일에 파리가 함락되고 6월 22일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서 프랑스 전역은 독일군의 완전한 압승으로 끝나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글을 읽다 보면 이탈리아가 파리 함락 전후로 참전할 거다라는 식의 앞뒤가 안맞는 내용이 나오는데, 해당 부분은 6월 10일 이전에 쓰여진 글로 보면 되겠습니다.
또, 설문에 응한 인사들 다수가 친일 성향인 경우가 많아 대놓고 독일이 지고 연합군이 이겼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언론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판국에 일본 내에서 삼국 동맹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었던지라 일개 식민지 언론이 그런 글을 게재했다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이해할 만한 일이긴 합니다. 무엇보다도 3번 질문부터 당시 일본이 왕징웨이를 앞세워 중국 대륙에 세운 괴뢰 정부인 난징 국민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관련된 거라 나올 답변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고 봐야 겠습니다.
세계대전은 어떻게 되나, 명가자씨(名家諸氏)의 흥미 있는 제관측(諸觀測)
시국문답
1. 유럽 대전은 독일측이 승전할 것 같습니까, 영불연합군측이 승전할 것 같습니까, 또 대전 장래의 예측은 어떻습니까?
2. 이탈리아, 미국, 소련은, 참전할 것 같습니까, 또 그 시기는 어떻습니까?
3. 화평건국(和平建國)의 깃발 아래에 착착 건설되여가는 난징국민정부 치하의 「신지나(신중국)」에 여행하실 계획이 없습니까, 가신다면 주로 어떤 시설을 보며, 어느 방면의 인물을 주로 대하고 싶습니까.
조선공작주식회사 회장 하준석(河駿錫)
(* 경남 창녕군 출신 기업가로 와세다 대학 졸업 후 선만 개척 설립위원, 조선사회사업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일본군을 위문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는 등 친일 활동에 앞장섬, 사후 친일인명사전 수록 명단에 포함.)
1. 문제가 너무 크므로 나와 같은 군사평론가가 아닌 전연 문외한이 이와 같은 난문제(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명답(明答)을 하는 것은 도리어 망거(妄擧, 망령된 짓)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모처럼 문의하섰음으로 나의 천식(淺識, 얕은 지식)의 범위 내에서 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대 유럽 대전은 지금같애서는 독일의 승전은 결정적이지만, 세상 일반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단기간에 종료될 줄은 생각치 않습니다.
영불(英佛, 영국과 프랑스)는 쇠퇴하였다 할지라도 세계의 일류국가로서 자타공인하여 왔을 뿐 아니라 특히 영국은 세계에서 일몰을, 불화할 만큼 세계 각지에 영토를 가지고 있음으로 영대제국의 자존심을 그렇게 용이하게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위에 육군은 독일의 적이 못되지마는 해군력은 상당히 강대함으로 그 승패를 졸지에 예단할 수는 불가능합니다. 요컨대 영국은 프랑스에 비하여 경제력, 무력 기타 측면에 있어서 프랑스와의 비교는 아닙니다.
이상과 같은 관점으로 보며는 대전(對戰, 서로 마주하여 싸움)보다는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줄로 생각이 됩니다.
2. 이탈리아의 참전은 시기의 문제로 결국 참전은 확정적임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은 그렇게 조급히 참전치 않으리라고 생각은 되나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가담하야 참전한 것과 같습니다. 전쟁이 제1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기에 긍하면(장기전으로 들어가면) 미국도 결국 끝을 찾아 드러갈 줄 생각합니다만은 그 시기는 도리어 예상 외로 빠르지 않을까. 왜냐하면은 이미 미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을 정신적으로 원조한다는 것을 언명한 바와 같이 미국과 영국의 연락선의 확보는 무엇보다 미국이 취할 제1의 방도이고 이것으로 인하야 독일과 이탈리아의 영국 본토 공격이 목전에 박하여 온 금일(今日, 오늘)의 전황으로 보아서 미국의 참전은 현저히 그 시기를 빠르게 한 것이 되지 않을가.
3. 아직 여행할 예정은 없으나 만일 여행하게 되면 왕징웨이(王精衛)를 비롯하야 신중국의 요인과 청년층의 유리한 인물을 맛나 보았으면은 합니다.
조선신문사장 김갑순(金甲淳)
(* 충남 공주 출신 기업가로 대한제국 시절 부여군수, 공주군수 등을 역임했으며, 충남 일대에서 막대한 토지를 매입해 부를 축척함, 유성온천의 초기 개발 투자자 중 한 명이었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친일 활동에 앞장섰기에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배복(拜復, 답변) 대단이 어려운 하문(下問, 물음)입니다. 천견(淺見, 얕은 생각)으로는
1. 유럽 대전의 장래를 예측하기는 곤란하지만 독일의 상당히 강화견실한 경제적 의도와 전격 작전이 주효하여 결국 유럽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로 신생활 질서가 건설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 미국은 주로 민족적 편견으로, 이탈리아는 이해관계로 참전할 것만 사실인데 이탈리아의 불로자득적(不勞自得的, 일하지 않고 얻으려 함) 야망으로 시기는 퍽 늦어질 듯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지중해 패권과 아프리카 때문에 3국 중 제일 먼저 참전하겠지요. 그 시기는 2개월 이내라고나 할가요.
3. 치안확보나 되면 동아신질서 건설의 실상을 보려고 중국에 꼭 가겠나이다. 간다면 주로 문화적 시설을 보며 왕징웨이 씨 및 기타 조야(朝野)의 중요인물은 물론 그릇된 사상 청년군의 무리라도 만나보겠나이다.
독일의학박사 정석태(鄭錫泰)
금반(今般, 이번) 유럽 대전은 즉 독일과 영국 양자 간의 주력됨을 알어야하겠고 양자 간의 어떤 측이 승전할가함에 있어서는 신이 아닌 이상 확연한 명답을 못할 것은 물론이러니와, 역사상 과거 현재를 들어 예측을 하여본다면 필연적으로 영국 측이 패배를 하여야 할 것이요, 또 신이 있어 소위 정의와 인도(人道)가 있다면 응당 영국은 이번에 필히 천벌을 받아야만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를 간략히 열거하여 본다면
1. 영국이 과거 4백여 년 동안 식민지 착취하여 온 역사로서는 그 방법이 정당하다고도 못할 것이요
인도(人道, 인간의 길)을 벗어나 갖은 악도(惡道)를 벌여왔으며, 영국 민족이 겨우 3, 4천만에 지나지 못하면서 세계영토 4분지 1(4분의 1)을 가지고도, 1억에 가까운 독일 민족에게는 일보(一步)의 양보도 없이 여지 없는 조약으로 생활력을 빼앗으며, 영국 자기 영토로서는 인종이 없어 천연과 자연의 자원을 썩혀가면서까지 타민족의 입국을 엄금하며, 상상도 하지 못할 만한 고율의 중세(重稅, 무거운 세금)으로서 타국의 물품까지 식민지에 수입하지 않아 자기 식민지까지 고통을 주며, 인도 3억의 고혈을 뽑아다가, 소위 신사(紳士, 젠틀맨)의 호화스러운 체면을 갖게 하는 것은 도저히 인자한 신으로서도 필연코 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자고(自古, 예로부터)의 역사로서도 언제든지 지속할 수 없는 운명은 오인(吾人, 우리 인류)에게 암시를 주고 있다.
2. 개인에게 예를 들어도 부유한 도련님으로서는 그 사상과 생활방법이 연약하고 빈탄(貧歎)한 자식으로서는 의지와 체격이 굳세고 튼튼한 것과 같이 부유한 영국으로서는 4백 여 년 단꿈에 거츠러운 풍파가 없이 언제든지 현상보관(現像保管)에 운명을 가지게 하고 쓰라린 운명의 배고픈 맛을 본 독일 민족으로서는 자나깨나, 살어야만 하겠다는 불타는 결심으로 용진(勇進, 씩씩하게 나아감)을 하니 아무리 보이지 안는 신이라도 그 운명의 어느 측을 도둔하여야 겠는냐는 것을 가히 짐작을 할 것이요.
3. 석일(昔日, 지난 날) 기리시야나, 로마제국이 없어진 역사와 같이 일흥일망(一興一亡, 하나가 흥하고 하나가 망함)은 자연의 순서인즉 유독 영국만 언제든지 신이 조력할 리는 없어 보인다
4. 운명론은 물론이나 독일은 절실히 민족으로나, 게르만 정신으로나, 질로나, 수로나 영국에게 결코 부족되는 바가 없다.
설사 역사상으로 영국이 망할 시기가 미급(未及, 아직 미치지 못함)이 되어 이번에 승리를 본다하여도 나는 얼마 안 있어 필연적으로 영국이 망할 것을 확언한다. 역사상 수십년 간이란 개인생활에 수분(數分)에 지나지 안는다.
5. 금일까지의 양자 간 전적(戰績)으로 언명하는 바는 아니다.
나는 개전 시초로부터 이상의 이론으로 분명히 예측한 바와 틀림이 조금도 없다. 북유럽, 플랑드르 전적으로서도 역사상 전례가 없은 연합국이 패배를 당하고, 불과 수일 내로 파리도 독일에게로 돌아가게 되였고, (독자가 본문을 볼 때는 파리의 함락도 물론 과거로 될 것) 체칠(처칠) 수상이 신에게 기적을 애걸하게 되었은즉 발서 나는 운명의 좌우가 분기(分岐, 나뉘어서 갈라짐)으로 생각된다.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 측으로 참전됨은 개전부터 상식으로 판명될 것이다. 이탈리아의 운명이 독일과 꼭 같으며 만일에 독일이 패배를 한다면 이탈리아의 운명은 필연코 점차 악화될 것이 물론인대 가령 참전 안된 이유는 이탈리아가 참전을 연기하는 것이 정치상으로나 전략으로나 독일 측이 극히 유리한 (이유는 생략) 점이 많으며 미묘한 소련과의 정세도 있으나 독일이 영국 본토 상륙시가 이탈리아의 참전기가 아닐까 한다.
미국은 소위 국제간 경찰권을 주창하려는, 괴상스러운 나라다. 영국 측의 참전을 내심으로는 희망하나 그 전기(戰時, 전쟁 시기)를 놓친 측이 다분히 많으며 일본 제국의 무형의 위력이 미국 참전를 금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독일이 최근 개전을 감행케 된 동기가 소련, 이탈리아, 일본의 위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련 참전도 종말에 있게 생각이 된다. 장소는 이란(중동 유럽, 近東歐)과 인도 방면이 아닐까 한다.
(* 독일 유학파 출신이라 그런지 독일의 민족성을 엄청 띄워주면서 정의의 힘(?)으로 영국을 반드시 물리칠 것이란 확신을 내보임, 근데, 질문은 분명 3개인데 1번 답변만 엄청 길게 해놨고, 정작 난징 국민정부를 방문할 거냐는 3번 물음엔 답하지도 않았다.)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殖株式會社叅事) 김동진(金東進)
(* 평남 평양 출신 언론인으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 활동을 시작했으며 <조선일보> 도쿄 지국장, <매일신보> 총무국장 등을 역임, 일제 강점기 말기에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것으로 추정.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1. 유럽 대전에서 어느 편의 전승(戰勝)할는지는 아직 미지수에 속하겠지만은 한번 독일이 승전한다면 전세계의 모든 질서가 변개(變改, 바꾸어 고침)될 것이므로 퍽 흥미를 끕니다.
2. 이탈리아와 미국은 참전할 가능성이 많이 보이나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의 자상천답(自相賤踏)으로의 몰락을 기다리는 판이니 좀처럼 나서지 않을 것 같소.
3. 신중국으로의 여행은 나 개인으로 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소. 따라서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나는 이가 없소.
함경북도회의원 유종하(柳鐘夏)
1. 독일 측이 기필코 승전할 것입니다. 대전의 장래는 미국이 영불연합군에 참전할 것을 단언합니다. 소련은 지금은 독일과 악수하나 최후에는 독일과 싸울 것입니다.
2. 이탈리아는 금월(今月, 이번 달) 중으로 독일에 참가하여 선전(宣戰, 전쟁을 선포함)할 것은 수모(誰某, 아무개)는 물론하고 추측할 것입니다.
3. 여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의 유럽 전쟁이나 지나 사변의 모든 원인은 유태민의 책동인 것이니 금후의 사태는 천변만화(千變萬化, 사태가 쉼없이 변화함)일지니 결국은 볼 필요가 없는 것이외다.
(* 뜬금없이 중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다 유대인의 짓이란 음모론을 제기)
경성여자상업학교 교장 한양호(韓亮鎬)
(* 을사늑약에 저항했던 의정부 참정대신 한규설의 장남)
1. 승패는 교전국 자체도 서로 모를 터인대 우리가 어떻게 예측을 하겠습니까. 단 장기로 끄을 것은 요량하고 있습니다.
2. 결국 참전할 것으로 보며, 시기는 지중해, 발칸에 전화(戰火)가 터질 때.
3. 만일 여행한다면 교육에 관한 과거와 현상의 진행상을 보려고 합니다. 내가 교육자이기 때문에.
만선일보(滿鮮日報) 편집국장 신경(新京) 홍양명(洪陽明)
(* 제주 출신 언론인으로 와세다 대학 졸업 후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조선공산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전적이 있음,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38년 전후로 <만선일보> 정치부장 겸 경제부장,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의 중국 침략과 만주국을 찬양하는 기사 및 논설을 게재,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 여기서 '신경'은 당시 만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 중국 지린성의 창춘에 해당되며, <만선일보>는 일제의 만주국 건국 이념인 오족협화를 홍보하기 위한 조선어 신문이었음.)
1. 독일 측이 무력전에는 이길 것 같으나 결과에 있어서는 무승부 상태가 되지 않을가요? 대전의 장래는 글쎄요, 미국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유럽을 소련의 볼셰비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의 투기장으로 만들지 않을가요? 확답할 용사(勇士) 없으리니 이만큼 해둘가요.
2. 점쟁이가 아니니 확언할 수 없으나 이탈리아 참전 가능성은 7분(70%), 미국 참전 가능성은 5분(50%), 소련 참전 가능성은 0. 시기는 독일군의 지상부대가 영국 본토에 발을 붙일 때.
3. 현하(現下, 현재 형편 아래) 일지간(日支間, 일본-지나 간) 번잡한 운수 관계에 유산방객(遊山訪客, 산으로 돌러다니는 여행객)을 목적한 여행자를 제한할 필요 (...) 이상.
만몽산업주식회사 안가소장 하얼빈 이선근(李瑄根)
(* 경기도 개성 출신 관료로 와세다 대학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 고등보통학교 교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 만주로 가 만몽산업주식사회 상무이사, 만주국 협화회 협의원 등을 역임, 해방 후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제4대 문교부 장관, 성균관대학교 총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조선왕조실록 영인작업을 개척하고 한국 근대사 연구에 매진함.)
1. 대전의 승부가 어찌될 것은 좀처럼 단언키 어렵고 아마도 장기전화할 것 같습니다. 대전에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세계는 한번 바뀔 듯 하구만요.
2. 이탈리아는 이 글을 쓰게 되기전 벌써 참전했다는 호외(號外)가 돌았고, 소련이나 미국의 참전 여하를 논하라면 소련보다 미국이 오히려 먼저 참전하지 않을까 합니다.
3. 신중국을 보고싶다는 것은 연래(年來, 오래 전부터)의 숙망(宿望,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희망)이면서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현안의 하나입니다. 금년 추수기가 끝난다면 연말 내로라도 가보고 싶은데 어찌될는지 미정(未定)이외다. 간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주로 사적(史蹟)-특히 서력동점(西力東漸)의 모진 자취를 보고 싶고, 인물로는... ... 글세요 만나준다면 왕징웨이 쯤이나 만나볼까요.
변호사 소완규(蘇完奎)
(* 전북 익산 출신 법조인으로 니혼 대학 법률과 메이지 대학 연구과 졸업 후 1933년 변호사로 개업해 활동, 나혜석이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 소송을 벌였을 때 담당 변호사였으며, 국민동원총진회와 조선임전보국단에서 활동하며 친일 행적을 남김, 해방 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됨.)
1. 독일 측이 좀 염려됨니다. 결국 두 편이 다 피폐되여서 소련이 어부(漁夫)의 리(어부지리)를 취하 하지나 않을까 생각됩니다.
2. 다 참전할 것으로 생각하는대 제일로 이탈리아, 다음 미국, 최후로 소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바빠서 못가겠습니다. 저는 간다면 북쪽으로 만수산(萬壽山, 중국 베이징 근처에 있는 산), 남으로 소항(蘇杭, 쑤저우와 항저우)에 가서 구경이나 실컷 하고 올까 하지요.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함상훈(咸尙勳)
(* 황해도 송화군 출신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와세다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활동, 일제 강점기 말기에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며 친일 논설을 발표함, 해방 후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54년 야당 정치인 신익희가 뉴델리에서 납북된 조소앙과 밀담으로 한반도 중립화를 모의했다는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고 제명됨. 사후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1. 지금 정도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독일군이 승리했다고 반드시 끝까지 승리할가는 의문이외다. 프랑스는 이것을 공격하여 항복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국을, 점령하거나 영제국을 항복시키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2. 이탈리아는 파리 함락 전후로 참전할지오. 미국은 이탈리아의 참전 후 영국과 프랑스가 고경(苦境, 어렵고 괴로운 처지)에 빠질 때 구원부대를 보냄으로써 참전할 것이외다.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와 충돌 안되는 범위에서 근동과 발칸 공작을 할 것이외다.
3. 작년도 가랴다 못가고 이번 봄도 가려다가 못갔습니다. 기어히 가보려 합니다. 가면 치안상태, 민심을 보고 왕징웨이, 왕극민(王克敏) 등 현(現) 국민정 요인들의 포부를 듣고저 합니다.
매일신보사 편집국장 김린이(金麟伊)
1. 유럽 대전은 현재의 전황으로 보면 독일이 승전할 것 같습니다. 독일군은 그 정비(整備)와 신무기가 우수하야 연속적으로 전격전에 성공하고 있으니 장래의 전국도 독일 측에 매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이탈리아의 참전은 결정적이라 하겠으며 미국은 참전한다 해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한데 결국은 군수품의 공급 정도로 참전은 아니할 것 같습니다. 소련의 태도는 불가측(不可測, 알 수 없음)이나 독일/이탈리아가 발칸 문제에 대하야 소련과 잘 타협이 되면 전쟁에 참가할 것 같지는 안소. 그러나 대전의 말기에는 세계적화(世界赤化)의 의미에서 참전할는지도 모르지요.
3. 기회만 있으면 신중국에 한번 꼭 가보겠습니다. 북중국의 풍경은 물론 신생 중국의 문화도 보고, 저우포하이(周佛海), 린바오성(林伯生) 등과 회담하고 싶으며 될 수 있으면 왕징웨이도 만나고 싶습니다.
경성중앙방송국 이정섭(李晶燮)
(* 함남 함흥 출신 언론인으로 프랑스 파리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중외일보>에 세계 기행문을 연재하다가 아일랜드의 독립 지도자와의 인터뷰로 조선의 독립 운동을 고취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음, 이후 1930년대 말부터 친일 활동에 나서 내선일체 방법론을 제시하고 <매일신보>에 삼국동맹, 대동아 공영권을 찬양하는 논설을 게재,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되었으며,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1. 참으로 딱한 문제를 딱하게도 모르십니다. 그야 현상으로 본다면 독일 측에 이로운 것이 사실입니다만은 이것으로써 결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오. 요전에 노상(路上, 길 가던 도중)에서 「마-텔」 씨를 만났으니 파리가 함락되여도 전쟁은 계속하리라고 합니다.
2. 그것은 이탈리아, 미국, 소련에 모르시는 것이 양책(良策, 좋은 계책)일 듯 합니다. 이탈리아와 소련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이오. 미국만은 그 동향을 추측할 수 있는대, 글쎄요 그처럼 용히 참전할가 모르겠습니다.
3. 신지나에 가보았으면 좋겠습니다만 돈도 없고 시간도 없소이다. 쇼와 2년(1927년)에 무한(武漢)까지 갔다 온 일이 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려 합니다.
대동광업주식회사 임원 이성환(李晟煥)
(* 함남 영흥군 출신 언론인으로 조선농민사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부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당 등에서 활동하며 친일 활동을 벌임, <삼천리>, <매일신보> 등 여러 신문과 잡지에 조선인 지원병, 징병, 징용을 선전하는 글을 게재했고, 사후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포함.)
1. 현재의 정세로는 독일의 승전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최후까지의 승리 여하는 오직 신명(神明) 이외에 알 사람이 있겠습니까. 대전 장래의 예측은 여좌(如左,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합니다.
- 유럽 연맹의 조직=식민지의 재분할. 해상항공제패권 등의 재협정.
- 군축회의의의 재현.
2. 이탈리아 참전은 결정적. 미국, 소련의 참전은 대세추이 여하에 있는데 소련의 태도는 별개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다음 봄쯤에 여행할가 합니다. 재중국 조선인 대우 문제를 조사연구하며 일본과 중국의 요로퇴진적(要路推進的) 인물을 다 만나고저 합니다.
독일철학박사 이극로(李克魯)
(* 경남 의령 출신의 국어학자, 정치인으로 1927년 독일 라이프치히-빌헬름 대학 철학부 졸업 후 한글 연구에 매진함,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해방 후 석방되었으며, 1948년 남북 연석회의로 평양으로 갔다가 그대로 잔류함, 이후 북한에서 국어 연구에 관련된 여러 직책을 역임했으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기에 숙청당하지 않고 살다가 1978년에 사망. 한글 타자기 개발에 공헌한 안과의사 공병우와도 인연이 깊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