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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랑스 관련 조선인들 역사 1884년 4월 6일자 기사엔 프랑스의 국력과 역사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소개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 교육 제도, 군사력 등을 수치까지 나열하면서 세세히 설명했는데, 마지막에 가선 갈리아 시대부터 시작되는 프랑스의 역사가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조선 최초로 프랑스사가 대중에게 전달되는 뜻 깊은 순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프랑스에 대한 지략속고(誌略續稿) (* 지략은 간단히 적은 원고이고, 속고는 전에 쓰던 원고에서 계속되는 원고를 가리킨다.) ​ 옛날 프랑스는 역시 야인(野人, 교양 없고 거친 사람)으로서 오로지 유목을 일삼았으며 이름은 가이(哥爾, 갈리아)라 하였고 인종은 네덜란드와 같았으며 전 국토는 일이만(日耳曼, 독일)의 서부와 함께 일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로마 원수(元帥) 해철(該.. 2023. 11. 2.
3. 폴란드 갔다가 죽을 기회만난 총영사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 하나였던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대전의 첫 희생자였던 만큼 폴란드인들은 독일군의 폭격과 학살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놀랍게도 그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돌아온 조선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선인은 그냥 유학생이나 교포가 아니라 일제 체제 하에서 높은 관직을 맡고 있던 외교관 박석윤이었습니다. 당시 박석윤의 직책은 무려 폴란드 바르샤바 주재 만주국 총영사였습니다.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이 만주국의 외교관직을 맡았다는 것은 박석윤이 상당한 충성심을 지닌 친일파였음을 시사해줍니다. 아닌게 아니라 당장 친일인명사전에서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은 6쪽, 송병준은 4쪽 정도로 다뤄지는데 박석윤은 무려 5쪽의 분.. 2023. 11. 2.
2. 제2차 세계 대전의 승패 예측 조선인의 역사 1940년 7월 1일자 잡지 에 게재된 글입니다. 유럽에서 한창 나치 독일과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일전이 치뤄지고 있을 무렵, 식민지 조선에선 당시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유명 인사들을 모아 전쟁의 승패 예측을 해보자는 주제로 문답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글을 쓴 독자들이 날짜를 정해놓고 한번에 글을 쓰게 아니라 여러 시간대에 걸쳐서 쓰여진 글을 한데 모은 것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정세와 맞지 않은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가령, 질문 중엔 이탈리아가 전쟁에 참여할 거냐는 내용이 있지만, 7월 1일자 기준으로 이미 6월 10일에 이탈리아가 영프에 선전 포고를 하고, 6월 14일에 파리가 함락되고 6월 22일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 협정이 맺어지면서 프랑스 전역은 독일군의 완전한 압승으로 끝나버린 상태였.. 2023. 11. 2.
1. 91년 이전 역사 헤이그 지난번 박승철의 폴란드 기행문에서 이어지는 글로 이번엔 네덜란드와 벨기에 일대를 둘러본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선 암스테르담, 헤이그, 로테르담 등지를 여행했고, 강대국 사이에 끼인 중립국으로 풍차와 수로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특징을 잘 포착해 설명해 놓았습니다. ​ 이 중에서 헤이그는 1907년 고종의 밀명을 받은 특사 일행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조선인에겐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조선인 자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만국평화회의장까지 직접 찾아간 박승철은 아예 이준 열사의 유령이 자신을 본다면 정말 기뻐할 것이다라는 묘사까지 남겼을 정도로 안타까운 심정을 표출했지요. 다만, 이준 열사가 할복 자결했다는 내용은 현재 사.. 2023. 11. 2.